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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나는 전북의 장맛

전북의 재발견

복(福)나는 전북의 장맛

호박전사진

시골집 장독대에 정성스레 놓여 있던 물 한 사발. 장은 장독에 오래 담겨 묵힌다고 숙성되는 것은 아니다. 항아리 속 고추장과 간장, 된장은 어머니의 비손으로 익어간다. 하늘과 땅의 기운에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야 장독들은 새하얀 가을볕에 눈이 부시도록 윤기를 낸다. 이 땅의 백반 한 상은 그런 정갈한 마음에서 이어지는 맛이다.

한 해 음식 맛 좌우하는 장맛
일 년 농사 안 중요한 것이 없지만, 그 중 장 담그기는 첫 손에 꼽히는 일이다. 삼백예순다섯날 하루에도 세 끼니, 천 번도 넘는 밥상에 장맛 아니고 무엇으로 버틸 재간이 있었겠는가. 메주는 띄워서 장을 담고, 장을 걸러낸 된장이야말로 농가의 한 해 살림에 더할 나위 없는 반찬이었다. 그리고 ‘독아지 속’ 고추장과 된장에 박은 짠지…. 장맛 버리면 한 해 음식 다 버리는 것이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장제품조(醬製品條) 첫머리에도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아니하면 좋은 채소와 고기가 있어도 좋은 음식으로 만들 수 없다. 설혹 외떨어진 촌야에 사는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러 가지 맛 좋은 간장이 있다면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우선 장 담그기에 성심을 기울이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함이 살림의 도리다’라고 씌어 있지만, 문자로 적히지 않았다고 그만한 것을 모를까. 그해 장맛이 좋아야 집안에 불길한 일이 없다고 널리 믿은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니다. 제 철에 메주 쑤어 장을 담그고, 된장·고추장 알맞게 마련되는 일은 집안의 가장 근본 되는 일이었다.

메주그림

정성과 인내, 가풍을 품은 장 맛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튼다’는 무신일(無神日) 이월 초아흐렛날. 무엇을 해도 탈이 없다는 이 날을 놓치지 않고, 아낙네들은 장을 담갔다. 한 숟가락이면 아픈 배가 나았다는 약(藥)간장, 푸근한 된장, 기운 나는 고추장이다. 장독에는 간장과 된장을 보살펴 주는 철륭신에게 흰 쌀밥도 놓고, 부정 타지 말라고 금줄을 두르거나 버선을 매달았다. 마치 주술 같은 그 장맛들은 부엌과 장독대에 깃든 정성과 인내, 사랑과 가풍에서 나왔다.

장은 그 고장의 바람과 온도와 습도가 담겨 맛을 낸다. ‘맛있는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 고추장은 물과 기후, 시기와 방법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순창은 예부터 옥천(玉川)고을이라 불릴 만큼 물이 좋으며, 적당한 정도의 햇볕에 잘 건조해 말린 태양초와 고추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효모균 번식에 적합한 기후 조건, 여기에 장인의 손맛이 어우러져 전통 비법으로 제조, 숙성된다. 최적의 상태에서 숙성된 절묘한 맛을 내기에 검붉은 색과 은은한 향기, 감미로우며 알싸한 고추장 맛이 혀에 오래 안긴다. 순창 고추장마을의 항아리들도 늘 반듯하다.

장담근사진

가슴에 차는 이 맛, 전북의 장맛
전북의 음식점들은 대개 순창의 고추장을 쓴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집만의 특유의 비법으로 다근 장으로 독특한 맛을 내는 곳도 꽤 있다. 전북의 음식이 감칠맛 나는 음식이 된 가장 큰 이유다.

전주비빔밥전문점인 <한국집>의 홍영표 주방장은 콩나물을 무치거나 풋배추를 버무릴 때 직접 담은 조선간장에 마늘만 넣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보통 세 가마니씩 쑤었는데, 물은 적게 잡고 메주와 소금을 많이 넣어 진하게 담기에, 조선간장이 애간장 나게” 맛있다. 남원 추어탕집인 <새집>도 40여 년 동안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맛을 낸다. 진안 마이산 부근에 있는 <초가정담>도 식당을 열면서부터 이이범 대표가 직접 담근 고추장, 된장, 간장을 사용한다.

<고궁> 박병학 주방장은 전주비빔밥의 생명은 ‘약고추장’이라고 말한다. 소고기(기름이 없는 우둔살)를 다져 고추장에 넣어 볶아 사용하는데, 생고추장은 너무 맵고, 잘못 숙성되면 메주 냄새가 나서 비빔밥이 떫기 때문이다. 요즘은 더덕을 함께 넣어 향과 맛이 더 깊게 한다. 표고버섯, 다시마, 멸치 등을 갈아서 조미료 대신 사용하는 전주 한벽루 옆 오모가리탕집 <김제집>의 김공례 주방장은 김치를 담을 때 옛날 방식으로 직접 담근 젓갈을 사용한다. 무밥과 콩나물밥으로 유명한 전주 <흙집>의 찬은 장맛이 제일이다. 청국장·계란찜이 중심에 놓이고, 장류만도 된장·게장·파간장에 집장까지 올려진다. 전주 <이연국수>(전 이조국수)의 비빔국수는 고명으로 얹은 오이 몇 가닥에 고추장 한 숟갈이 전부지만, 맛이 가슴에 찬다.

최기우(극작가, 최명희문학관 기획실장)

원본글출처 : 전북은지금(http://inews.jb.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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