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전봉준유적(전봉준장군고택) — 정읍시 문학관·생가

정읍전봉준유적(전봉준장군고택)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의 문학관·생가입니다. 주변 음식점과 숙박 정보도 함께 확인해 보세요.
- 구분
- 문학관·생가
- 지역
- 정읍시
- 주소
- 전북 정읍시 이평면 조소1길 20
- 관리기관
- 정읍시 유산정책팀
- 문의
- 063-536-5189
- 이용요금
- 무료입장
소개
1981년 11월 28일 사적 제293호로 지정 된 이 건물은 일명 녹두장군(綠豆將軍)인 전봉준 선생이 동학운동(東學運動)을 일으킬 당시 거주하였던 집이다.전봉준 선생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철종(哲宗) 5년(1854)에 이 지방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 고종(高宗) 27년(1890) 동학에 입도(立道) 하였으며,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있었다.당시 전국의 농촌은 일부 탐관오리(貪官汚吏)의 학정(虐政)으로 농민들의 원성(怨聲)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이 곳 고부현(古阜縣) 역시 군수(郡守) 조병갑(趙秉甲)이 만석보(萬石洑)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水稅)를 거두는 등,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생활은 피폐하고 원성이 높았다. 이 때 선생은 고부현의 동학 접주(接主)로 분노에 찬 농민들과 동학교도의 조직을 이용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구호를 내세우고 동학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고종 31년(高宗 1894) 갑오 동학(甲午 東學) 혁명(革命) 당시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이 살았던 오두막집으로 흙담 4칸 집이다. 그런데 서편으로 한칸을 근래에 붙여 지은 것으로 원래는 방 1칸, 광 1칸, 부엌 1칸으로 당시 우리나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가옥 형태이다. 이 고댁(古宅)은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정읍군에서 1974년에 국비(國費)와 군비(郡費)로 크게 수리한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안채(초가)는 높이 15㎝의 잡석의 축대 위에 세워졌다. 일반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위치하여 이에 이어서 큰방과 웃방이 배치되는 것인데 이 집은 이 순서를 무시하고 있다. 끝방은 방(房)으로 보다는 살림살이 등 속을 넣어두는 도장으로 사용된 것 같다. 큰방과 웃방은 장지(障紙)로 칸막이가 되어 필요한 경우 공간으로 터놓을 수 있으며 천장(天障)은 두 가지 다 연동(連動) 천장이다. 두 개의 방 앞으로는 퇴(退)마루를 놓았으며, 대살문으로 드나드는 끝방 전면에 반쪽에는 짧은 담을 두르고 이 곳에 땔나무 등을 두었으나 이것이 본래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부엌의 전후 벽에는 널문을 달아 필요한 때에는 잠글 수도 있도록 되었다. 대문의 동편에는 잿간을 겸한 변소(草家)가 있으며 출입문으로는 한 짝의 열매문을 달았다. 주위에는 흙담이며 짚으로 된 이엉을 덮었다.전봉준의 공초록(供招錄)에는 이 곳에 와서 수년이 되었다고 했는데 촌로(村老)들의 말에 의하면 처음 이웃 마을 양교리(陽橋里 양간다리)에서 옮겨온 것이라 한다.갑오년(甲午年 1894) 1월에 봉기(蜂起)한 후 안핵사(按衍使) 이용태(李容泰)가 내려와 동학교인이라고 지목되는 사람의 집을 모두 불질러 버렸는데 이때 전봉준의 집도 불타버렸다고 한다.그 동안에 이론(異論)이 있었으나 1974년에 보수(補修)를 하면서 해체(解體)작업을 하는 중에 밝혀진 상량문(上樑文)에 [무인(戊寅) 2월 26일(高宗 15年 1878)] 세운것으로 되었으니 어쩌면 전부 타지는 않고 남아 있는 폐옥(廢屋)을 보수하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문 보기: https://jbfood.go.kr/juhtml/food/foodshop/main.html?cnt=63&smbu=tour&fpmode=view&plcode=00070003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