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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과 시동생의 걸작품,『규합총서(閨閤叢書)』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08.05.27 차경희(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전공)

형수님과 시동생의 걸작품,『규합총서(閨閤叢書)』와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羹)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醬)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酒) 마시기는 겨울같이 하라.” 1815년경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규합총서』에 기록된 말이다. 한국음식문화의 정수를 알려주는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표현이다.

한국음식은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이 될 만큼 영양학적으로 우수성이 입증이 되며, 세계인이 주목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우리의 전통음식에 대한 현존하는 기록은 적다. 음식이라는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어버려 자취를 남기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고, 음식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한 조선의 유교사상과 음식의 주체가 되는 여성이 교육으로부터 소외되었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때문에 한국의 전통음식을 연구하기 위해선 현존하는 농서나 산문 등에 까지 의존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19세기에 기록된 『규합총서』와 『임원십육지』는 한국음식문화 연구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 두 책은 19세기 조선을 살았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필독서인 생활백과전서이다.

『규합총서』는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저술한 책으로 음식, 바느질, 농사, 양육 등 가정살림에 필요한 전반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음식을 다룬 ‘주사의[酒食議]’에는 장 담고, 술 빚는 법을 비롯하여 밥, 떡, 과줄, 온갖 찬(饌)을 만드는 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김치 담그기에 처음으로 젓갈을 넣은 기록이 있다. 배추와 무, 갓에 청각, 파, 마늘, 생강, 고추 저민 것 등으로 양념을 하고, 조기젓, 준치젓, 밴댕이젓 등을 함께 넣고, 생젓국으로 국물의 간을 하여 익힌 ‘석박지’가 그것이다. 임란(壬亂)이후 도입된 고추는 18세기 중반부터 김치의 양념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19세기 초 젓갈까지 합류하여 오늘날과 같은 김치의 형태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규합총서』에는 ‘첫째, 음식을 먹을 때에는 그것을 심고 거두고 찧고, 조리하는 등 만드는데 들어간 공을 생각하라. 둘째, 어버이와 임금을 섬기고, 입신(立身)을 위하였는지 생각하고, 맛에 겉치레를 하지 말라. 셋째, 마음을 다스리고, 배불리 먹을 욕심을 내지 말라. 넷째, 오곡(五穀)과 오채(五菜)는 몸을 살찌우니, 먹는 것으로 의약(醫藥)을 삼아라. 다섯째, 공덕(功德)을 이룬 후에야 음식을 먹으라.’라는 사대부(士大夫) 식시오관(食時五觀)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됨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닦고, 소임을 다한 후에야 먹을 것을 찾고, 식탐을 내지 말라는 경고문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한 불변의 진리로 요즈음처럼 풍요로운 물질에 쌓여 음식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우리를 경각시킨다.

『임원십육지』는 서유구(徐有榘)에 의해 1827년경 편찬된 농업 위주의 백과전서이다. 농학을 비롯한 실학에 일가견이 있었던 서유구는 『임원십육지』를 비롯하여 『행포지(杏蒲志)』,『옹희잡지(饔饎雜志)』,『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종저보(種藷譜)』등을 저술하였다. 『임원십육지』의 서언에서 ‘인간이 세상을 사는데 두 가지의 도(道)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밖에 나가서 제세안민(濟世安民)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집에 들어와서 생활할 때 좋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 높은 뜻을 함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 가지는 어디에도 경중을 따질 것이 없이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후자에 해당하는 향촌에서 수심양지(修心養志)하는데 참고가 될 만한 책이 없으므로 이를 안타까이 여기고, 그 뜻을 세워 향촌생활과 관련이 있는 모든 일을 분류하고 고래부터의 수많은 문헌을 참고삼아 책으로 엮으면서 그 이름을 “임원(林園)”이라 한다.’라고 적으며 이 책에 대한 집필의지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향촌생활에 필요한 일을 16지(志)로 나누고, 각 항목마다 총론과 각론으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그 중 음식에 대한 분야가 ‘정조지(鼎俎志)’이다. ‘정(鼎)’은 발이 3개가 달리고 양쪽에 귀가 있는 솥을 뜻하는 글자로 당시 동물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음식을 삶고 끓여서 익히는 기구를 말한다. 또 ‘조(俎)’는 제향에 쓰이는 희생물을 담는 제기로서 도마의 뜻으로도 쓰인다. ‘정조지’에는 245여권의 한국․중국․일본문헌을 인용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조선의 토양과 기후를 고려하여 당시 조선의 실정에 맞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서유구 자신의 의견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정조지’에는 240여종의 식재료, 480여종의 밥, 찬물(饌物), 떡, 한과가 기록되어 있고, 100여종의 술, 110여종의 양념과 누룩, 엿기름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기록된 양이나 내용의 충실도 면에서 현존하는 고문헌 중 최고의 고조리서(古調理書)라 할 수 있다.

규합총서임원십육지

그런데 『규합총서』와 『임원십육지』, 이 두 책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두 책의 저자가 한 집안 식구인 것이다. 서유구는 대구 서씨이며, 빙허각 이씨는 이 집안의 며느리, 즉 서유구의 형인 서유본(徐有本)의 아내, 그러니까 서유구의 형수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사 연구에 있어 서유구의 집안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서유구 자신이 집필한 서적만도 대단하지만, 조부(祖父)인 서명응(徐命膺)은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 그의 아버지 서호수(徐浩修)는 『해동농서(海東農書)』, 형수인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는 『규합총서(閨閤叢書)』뿐만 아니라, 『청규박물지(淸閨博物誌)』, 『빙허각고(憑虛閣稿)』 등을 남겨 우리나라 음식문화 연구의 뼈대를 갖출 수 있게 하였다. 당대 최고의 명문가이면서도 당시 사대부들이 도외시 하였던 실학연구에 대를 이어 생활의 풍요로움을 도운 집안이었던 것이다. 한 집안 식구였으니 학문에 대한 논의가 더욱 쉬웠을까? 『규합총서』와 『임원십육지』, 형수인 빙허각 이씨와 시동생인 서유구가 남긴 두 책은 한국음식문화 연구에 양대 산맥을 이루며, 대들보 구실을 하고 있다. 그 기반 위에 우리가 또 다른 깊고 풍요로운 산들이 계속되어 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음식은 사람을 자연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다. 사람은 음식을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며, 역으로 음식도 자연과 사람의 유기적인 관계 하에 탄생된다. 한국의 전통음식은 한국의 자연과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의 조상의 얼이 담겨있다. 때문에 음식은 문화를 수단이 되며, 한국의 전통음식은 한국의 대표문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우리의 음식, 이것이 바로 우리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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