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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기고문

동지(冬至)와 팥죽

08.10.27 차경희(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전공)

조화와 기다림의 미학, 김치

동지는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다. 반대로 다시 해가 길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1년을 해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옛날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800년 동안 설로 쇠기도 했단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11월경에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한다. 팥죽을 쑤는데 찹쌀가루로 새알모양의 떡을 만들어 그 죽속에 넣어 새알심을 만들고, 꿀을 타서 시절음식으로 삼는다. 그리고 팥죽 국물을 문짝에 뿌려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 생각하건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공공씨(共工氏)가 재주 없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싫어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치는 것이라.”하였다. 이 공공씨는 요순시대 범죄자들에게 벌을 주는 관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아들은 망나니 노릇만 하여 늘 애달아하였는데 어느 동짓날 젊은 나이에 느닷없이 죽게 된다. 그런데 죽어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 ‘천연두’라는 전염병을 일으키는 역신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공공씨는 비록 아들일지라도 생전에 싫어했던 팥죽을 마을 어귀와 대문마다 칠해 마을 주민을 구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그로부터 매해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먹었다는 것이다. 또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제2권에는 “타향에서 《주역》을 읽다가 동짓날을 알고서(至日他鄕讀易知) / 서등을 새벽에 공명사에서 빌려온다 (書燈晨乞孔明祠) / 옛날 강가 집의 동짓날 밤에는(昔年江舍陽生夜) / 팥죽을 함께 먹으면서 이별하지 않았건만(荳粥同嘗不別離)” 하고 동짓날에 타향에서 내제(內弟)를 그리워하며 쓴 시(詩)가 실려 있다.

「영조실록」에는 “임금이 육상궁(毓祥宮) 에 나아가 전배(展拜)하고 환궁하는 길에 여경방(餘慶坊)에 들러서 나이 60세 이상 되는 본방 백성을 불러오도록 한 다음 노상(路上)에서 쌀을 내려 주고, 또 선전관(宣傳官)에게 명하여 종로 거리의 걸인들을 데려오도록 한 다음 팥죽을 먹여 주었으니, 이날이 바로 동지일(冬至日)이기 때문이다.”(영조 115권, 46년(1770) 11월 6일, 戊申)라고 기록되어 있어 동지에 팥죽을 임금도 즐기며, 백성들에게 세시음식(歲時飮食)으로 나누어 준 것을 알 수 있다.

이 풍습은 지금도 남아 동지를 작은설이라고도 하고, 팥죽을 나누어 먹는다. 팥죽에는 자기의 나이 수만큼의 새알심을 넣어 먹는다.

그럼 팥죽을 쑤어 보자. 팥죽은 먼저 쌀을 씻어 충분히 불려둔다. 팥은 씻어서 냄비에 담고 충분히 덥힐 정도의 물을 부어 불에 올려 한 소끔을 먼저 끓인다. 끓어오르면 물만 따라 버리고 새물을 부어 다시 푹 삶는다. 이것은 팥에 들어있는 사포닌성분을 제거하고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위장이 약한 사람들은 배탈이 나기도 한다. 팥이 무르게 삶아지면 더울 때 나무주걱으로 으깨고 체에 내려서 나머지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걸러서 껍질은 버리고 앙금은 가라앉힌다. 찹쌀가루는 뜨거운 물에 소금을 타서 넣어 익반죽하여 지름 1cm정도의 새알심을 동그랗게 빚는다. 냄비에 걸러둔 팥의 윗물만 따라서 붓고 불린 쌀을 넣어서 가끔 저으면서 쌀알이 완전히 퍼질 때까지 끓인다. 팥 앙금을 마저 넣어 저으면서 잘 어우러지게 끓이다가 새알심을 넣는다. 새알심이 익어서 위로 떠오르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쌀알을 넣지 않고, 곱게 내린 팥 앙금에 새알심을 넣어 죽을 쑤고, 설탕을 넣어 달게 먹기도 한다.

팥은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오곡(五穀)의 하나로 밥, 죽, 떡의 소나 고물 등에 널리 이용되어왔다. 영양성분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B1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특히 비타민 B1은 주식이 쌀인 우리에게는 탄수화물의 소화를 돕는 보조효소로 필수적인 존재이다. 또 팥 껍질에 있는 섬유질은 정장작용을 돕는다. 그러므로 팥으로 만든 음식은 영양보충과 벽사(辟邪)의 상징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동지에 먹는 팥죽은 우리 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한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안의 곳곳에 뿌려 나쁜 기운을 쫓는데 이용했다. 붉은색을 무서워하는 나쁜 귀신을 놀라 달아나게 하려는 목적이다. 팥은 곡식 중 유난히 붉은 색을 띤다. ‘붉다’는 의미는 ‘밝다’는 말에서 왔다. 우리 조상들은 귀신들은 어두운 것을 좋아하고 밝은 것을 싫어해 달아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은 후 다는 금줄의 붉은 고추도, 아기의 백일상에 오르는 수수팥떡도, 10월 상달의 붉은 팥시루떡의 고사떡도, 장(醬) 항아리에 띄우는 마른고추도, 장독가에 맨드라미를 심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동지는 음력으로는 11월이지만 양력으로는 12월 22일경이다. 이 동짓날이 음력으로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였다. 그래서 음력 11월 10일 이전에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았다. 옛날에는 동지에 팥죽을 쑤면 제일 먼저 사당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 먹었다.

우리에게는 ‘한솥밥의 정신’이 있다. 더구나 동지의 팥죽을 비롯한 세시음식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융합과 평등 그리고 정신적 동질성과 유대력 강화의 매개체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학식이 높은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남녀노소 누구라도 팥죽 한 그릇에 우리는 그저 똑같은 사람이며, 하나인 것이다.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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